2017년 3월 16일 목요일

전후 소설의 성격과 이범선 문학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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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소설의 성격과 이범선 문학

전후 소설의 성격과 이범선 문학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목 차
1. 전후 소설과 허무주의
2. 전후 소설의 새로운 흐름과 `결별의 모티프`
3. 50년대 문학과 이범선
4. 결론: 징검다리로서의 이범선

전후 소설의 성격과 이범선 문학

1. 전후 소설과 허무주의
1950년대를 소설사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10년 단위로 근 현대 문학사를 시기 구분하는 관습 때문에 50년대 전체를 한 시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 관례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그런 식으로 1950년대를 시기 구분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먼저 필자의 생각부터 밝히자면, 1950~60년대를 한 시기로 묶어야 옳다고 본다. 이 시기는 전체적으로 한국전쟁의 자장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런 점에서 크게 보면 지금도 한 시대 단위임에 틀림없지만, 작은 시기 구분으로 들어갈 경우에도 50년대와 60년대는 한 묶음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소설사적으로 한국전쟁의 상처와 싸운 시기였다. 그래서 50-60년대 작가들에게 한국전쟁은 항상 그들 문학의 원 체험으로 작용한다. 7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작가들은 한국전쟁의 자장을 벗어나 보다 넓은 차원에서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50-60년대의 문학이 아무런 변화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략 50년대 중 후반, 즉 56~7년 경을 전후하여 한국전쟁에 대한 대응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50년대 전반기가 한국전쟁의 체험에 압도되어 체험의 직접성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데 비해 50년대 후반기부터는 체험의 직접성을 벗어나 한국전쟁을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60년대까지 계속되며, 70년대부터 다른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50년대 전반기가 전쟁 체험의 직접성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은 전쟁의 후유증이 휴전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위력을 떨쳤기 때문이다. 여기서 후유증이란 전쟁이 낳은 제반 물질적 ·정신적 상처에 직접적으로 긴박 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다시 말해 일종의 심리적 전쟁 상태라 할 수 있겠다. 전쟁은 일단 종결되었지만, 휴전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당시의 작가들은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상태였다. 그래서 전쟁 체험이 세계를 바라보는 잣대가 되며, 전쟁과 같은 어떤 것이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보편적 조건이 된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은 인간관을 뒤바꿔 놓았다. 전쟁터에서의 인간이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적을 죽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곧 동물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전쟁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은 생존 본능만이 활개치는 동물이다. 또 현실 역시 일상적 현실이 아니라 일종의 전쟁터가 된다. 인간의 야수적 욕망이 서로 충돌하고 투쟁하는 공간으로서의 현실, 그것은 전쟁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50년대 전반기의 작가들에게 현실은 전쟁의 연장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전후 작가들에게 전쟁이란 일시적 체험이 아니라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론적 조건이었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전쟁이란 당시의 작가들에게 그에 대한 합리적 인식이나 객관적 성찰이 불가능한, 인간이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전지전능한 존재였던 셈이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존재론적 인식은 전쟁과 현실을 등치 시키면서 현실을 변화 불가능한 타자로 인식하도록 강요한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현실이 전쟁터라면, 그 현실이란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존재론적 공간일 뿐이다. 현실은 인간의 주체적 의지나 실천과는 관계없이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체와 세계, 곧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은 불가능해진다. 이로부터 50년대 전반기 특유의 깊은 허무주의가 발생한다. 주체와 세계의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현실의 변화란 기대할 수 없다. 야수적 욕망들이 충돌하는 전장(戰場)으로서의 현실을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허무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손창섭 ·장용학· 김성한 등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은 이같은 허무주의적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정 손창섭 문학의 허무주의는 등장 인물들에서부터 나타난다. 손창섭 문학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비정상성이다. 문학 작품에 비정상인이 등장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문제는 그 비정상성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성을 전제한 존재론적 인간관이라는 점이다. 이는 무엇보다 그의 소설에 등장 인물들이 왜 그런 성격이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성격화에 대한 해명 대신 손창섭은 그가 원래부터 그런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손창섭 문학에서 성격은 언제나 미리 `주어져` 있다. 성격이 이처럼 미리 주어질 경우 성격의 변화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성격이 미리 주어졌다는 것은 결국 성격은 `타고난 것`이라는 운명론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손창섭 문학의 초점이 궁극적으로 인간성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도 그래서 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의 인간관이 대단히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미해결의 장」의 지상에 따르면, 인간은 `박테리아`이다. 요컨대 인간이란 존재는 지구에 전혀 보탬이 안 되는 일개 병균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손창섭 문학의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비정상성의 핵심은 동물성 또는 악마성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부정성은 `타고난 것`이라 바뀔 가능성마저 없다. 아이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이 커서 지구를 갉아먹으리라는 섬뜩한 공상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거니와 아이들에게서마저도 아무런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부정적 인간관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란 허무주의 밖에는 없다. 손창섭의 현실관 또한 이러한 인간관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니, 「인간동물원초」 같은 작품에서 잘 나타나듯, 현실은 돈 · 섹스 · 권력 등 추악한 동물적 욕망의 충족을 위한 투쟁의 장에 불과하다. 곧 현실이란 전쟁터 그 자체인 것이다. 손창섭의 허무주의는 그런 점에서 `욕망으로서의 인간관`에 기초한 존재론적 허무주의라고 할 수 있다.1)
장용학의 허무주의는 손창섭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다. 장용학은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1013515&sid=knp868group1&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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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목 : 전후 소설의 성격과 이범선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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